언뜻 보면 19세기 문명권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모순의 낙원. 화려한 복식과 고전적인 생활 양식의 이면에는, 인류의 모든 것을 앗아간 거대한 재앙의 상흔이 숨겨져 있다. 이곳은 과거가 아닌, 문명의 붕괴와 후퇴를 겪은 머나먼 미래의 세계.
재앙 이후, 소수의 생존자들은 무너진 세계 위에 하나의 거대한 연맹 국가를 세웠다. 하지만 급감한 인구와 소실된 기술의 공백을 완전히 메우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 결과,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는 낡은 기술과 오직 생존을 위해 급격히 발전한 첨단 기술이 공존하게 되었다. 이 극심한 기술 불균형이 바로 이 세계의 상징이다.
연맹과 돔 - 단절된 낙원과 버려진 땅
연맹의 영토는 거대한 돔(Dome) 으로 나뉜 여러 ‘지구(區)’로 구획된다. 수도에 가까울수록 낮은 숫자가 부여되며, 국가의 한정된 자원은 수도와 인접 지구에 집중된다. 따라서 중심부는 풍요와 발전을 누리지만, 외곽으로 갈수록 환경은 급격히 낙후된다.
돔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바깥은 생명의 숨결이 거의 닿지 않는 척박한 황무지다. 이곳은 오랜 세월 동안 인류에게 금단의 땅으로 여겨져 왔다.
새로운 시대의 인류
대재난은 인류의 가치관 자체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생존과 무관한 전통적인 관습과 제도는 실용성을 잃고 사라졌으며, 그 자리를 다양한 형태의 가족 구조가 대신하게 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아이를 대하는 방식에서 나타난다. 인적 자원이 무엇보다 귀해진 이 세계에서 자연 출생은 극히 드물며, 대부분은 인공수정과 인공출생을 통해 태어난다. 한 명의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곧 국가 전체의 축복이자 희망이다. 국가는 양육과 교육의 전 과정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며, 모든 아이는 개인의 재능에 최적화된 교육을 받는다.
미래가 시작되는 무대
잃어버린 문명을 재건하려는 열망은 문화와 예술의 부흥으로 이어졌다. 예술적 재능을 지닌 유소년은 국가의 미래를 이끌 가장 귀한 보물로 여겨지며, 학령기에 이르면 각 학교로부터 입학 제안을 받는다.
그 정점에 있는 최고의 교육기관이 바로 수도에 위치한 에테르니온 국립학교다. 유치부부터 대학원까지 전 과정을 갖춘 이곳은 학생의 자유와 기본권을 존중하는 학풍으로 명성이 높다. 특히 프랩스쿨(중등부)과 아카데미(고등부)는 전원 기숙사 생활을 원칙으로 하며, 예술·인문·과학·기술 각 분야의 차세대 인재들이 이곳에서 길러진다.